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체면"을 중시한다.
자신이 처한 직위나 명예를 중히 여기며
이에 합당한 대우를 받거나 처신을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작고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님이 쓴 짧은 수필 중에
서울 남산골 샌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난한 양반의 초라한 살림살이에도 꼿꼿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하는
딸각발이 남산골 양반의 이야기를 그리며
그는 그것이 양반의 정신이라고 칭송하였던 것이라 기억한다.
어릴 적 그 글을 읽었을 때 참으로 멋나 보였다.
가난해서 끼니를 못이을정 땅을 가꾸어 곡식을 얻지 않겠다던 것은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어리석기까지한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 속에서 삶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삶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괴로우면서도
요한을 죽이는 것을 허락한다.
옳은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의 체면이 깍이는 것이 부끄러워
옳지 않은 것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는 요한의 옳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올바르게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체면"을 유지하는데 더 마음을 쓴다.
그렇다면 그의 "체면"은 무엇이었을까?
"왕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 보여지는 것"을 생각했던 것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 역시 체면을 내세우며 "노릇"을 하려고 노력하고,
"대우"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본분"을 다 하는 것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봄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요즘은 외적인 것을 갖추는 것이 체면을 지키는 것이라 많이들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직분에 맞게 처신하는 것은 옷차림이나 외적 치장에 따르지 않고,
그의 마음에 나오는 말과 행동과 태도에 따르는 것이다.
사제로서의 체면은 그의 말과 행동과 태도에 기인하지 그의 옷차림에 기인하지 않는다.
신자로서의 체면은 그의 말과 행동과 태도에 기인하지
그의 사회적 지위나 부에 기인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에 기댈 때,
우리 역시 헤로데처럼 "보여지는 것"을 추구하다 죄의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주님, 저희에게 겸손함을 배우게 하소서. 저희가 가진 것이 모두 당신으로부터 온 선물이기에 다른 이에게도 선물로 나누어질 것이지, 저희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그로 인해 저희가 당신 것임을 아는 겸손함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체면"을 중시한다.
자신이 처한 직위나 명예를 중히 여기며
이에 합당한 대우를 받거나 처신을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작고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님이 쓴 짧은 수필 중에
서울 남산골 샌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난한 양반의 초라한 살림살이에도 꼿꼿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하는
딸각발이 남산골 양반의 이야기를 그리며
그는 그것이 양반의 정신이라고 칭송하였던 것이라 기억한다.
어릴 적 그 글을 읽었을 때 참으로 멋나 보였다.
가난해서 끼니를 못이을정 땅을 가꾸어 곡식을 얻지 않겠다던 것은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어리석기까지한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 속에서 삶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삶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괴로우면서도
요한을 죽이는 것을 허락한다.
옳은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의 체면이 깍이는 것이 부끄러워
옳지 않은 것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는 요한의 옳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올바르게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체면"을 유지하는데 더 마음을 쓴다.
그렇다면 그의 "체면"은 무엇이었을까?
"왕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 보여지는 것"을 생각했던 것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 역시 체면을 내세우며 "노릇"을 하려고 노력하고,
"대우"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본분"을 다 하는 것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봄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요즘은 외적인 것을 갖추는 것이 체면을 지키는 것이라 많이들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직분에 맞게 처신하는 것은 옷차림이나 외적 치장에 따르지 않고,
그의 마음에 나오는 말과 행동과 태도에 따르는 것이다.
사제로서의 체면은 그의 말과 행동과 태도에 기인하지 그의 옷차림에 기인하지 않는다.
신자로서의 체면은 그의 말과 행동과 태도에 기인하지
그의 사회적 지위나 부에 기인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에 기댈 때,
우리 역시 헤로데처럼 "보여지는 것"을 추구하다 죄의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주님, 저희에게 겸손함을 배우게 하소서. 저희가 가진 것이 모두 당신으로부터 온 선물이기에 다른 이에게도 선물로 나누어질 것이지, 저희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그로 인해 저희가 당신 것임을 아는 겸손함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