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마카7,1-2.9-14 / 2테살2,16-3,5 / ㄹ카20,27-38>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질문을 통해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부활도 없고 죽음 이후의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사두가이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함께 구전 전승을 받아들였던 바리사이와 달리, 율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거부했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사두가이들은 내세의 보상이나 형벌을 믿지 않았고, 현세의 삶만을 중시하며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시선은 하늘이 아닌 이 땅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시선을 하늘로 들어 높이도록 초대하십니다.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이들은 천사들과 같아져 더 이상 죽는 일도 없고, 또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20,35)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땅에 속한 사람들이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초대를 다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생활의 정의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비유라는 말이 있지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어느 모로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사람들, 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서, 오히려 이런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비유로서의 우리 삶은 모든 사람들, 특별히 우리 교회의 평신도 형제자매들에게 하나의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정체성에 따라 올바로 살아갈 때, 비로소 평신도 형제자매들도 천상 고향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봉헌되고 축성된 삶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삶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유학 중에 다른 신학생들과 함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봉사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들입니다.”라는 이야기였지요. 그러니 군림하거나 다스리려 하지 말고, 봉사하는 마음과 자세로 신자들을 대해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사제들뿐 아니라, 모든 수도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초대받았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자신의 소명대로 잘 살기를 바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내 정체성에 걸맞게 충실히 사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신도 주일을 지내는 오늘, 무엇보다 우리들이 하느님 나라의 비유로서의 삶을 잘 살아가기로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평신도 형제자매들이 우리를 통해 희망의 빛을 보고, 현세에서 더욱 충실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성소를 담대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다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2마카7,1-2.9-14 / 2테살2,16-3,5 / ㄹ카20,27-38>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질문을 통해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부활도 없고 죽음 이후의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사두가이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함께 구전 전승을 받아들였던 바리사이와 달리, 율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거부했었지요. 이러한 이유로 사두가이들은 내세의 보상이나 형벌을 믿지 않았고, 현세의 삶만을 중시하며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시선은 하늘이 아닌 이 땅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시선을 하늘로 들어 높이도록 초대하십니다.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이들은 천사들과 같아져 더 이상 죽는 일도 없고, 또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루카20,35)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땅에 속한 사람들이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초대를 다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생활의 정의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비유라는 말이 있지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어느 모로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사람들, 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서, 오히려 이런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비유로서의 우리 삶은 모든 사람들, 특별히 우리 교회의 평신도 형제자매들에게 하나의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정체성에 따라 올바로 살아갈 때, 비로소 평신도 형제자매들도 천상 고향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을 기쁘게 걸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봉헌되고 축성된 삶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삶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유학 중에 다른 신학생들과 함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봉사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선발된 사람들입니다.”라는 이야기였지요. 그러니 군림하거나 다스리려 하지 말고, 봉사하는 마음과 자세로 신자들을 대해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사제들뿐 아니라, 모든 수도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초대받았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자신의 소명대로 잘 살기를 바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그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내 정체성에 걸맞게 충실히 사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신도 주일을 지내는 오늘, 무엇보다 우리들이 하느님 나라의 비유로서의 삶을 잘 살아가기로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평신도 형제자매들이 우리를 통해 희망의 빛을 보고, 현세에서 더욱 충실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성소를 담대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다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