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2020-10-12
조회수 715

<갈라4,22-24.26-27.31─5,1 / 루카11,29-32>


자유롭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 욕구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억압받는 것을 누구나 싫어하고, 또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각자가 추구하는 자유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예컨대 공간적인 의미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구조적인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 또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내재된 예술혼을 드러내는 것을 자유의 실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보다 더 근본적인 자유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만든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길이지요. 어제까지 옳다고 믿었던 관념으로부터, 또 이것이 최선이라고 고집했던 것으로부터의 자유, 다시 말해서 어제의 나로부터 오늘의 나로 변화하는 자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날마다 조금씩 자기 껍질을 뚫고 자신을 키워나가는 나무처럼, 그렇게 날로 성장하고 더 큰 나로 자라나는 길이 있다는 것이지요. 만일 이 길로 들어서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만든 감옥에 자신을 구속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어제의 나로부터 오늘의 나로 변화하는 자유로 초대하시는 것이지요. 이 초대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혜로 받아들이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남방 여왕이 솔로몬의 말을 듣기 위해 땅끝에서 다른 끝으로 가는 것만큼이나 수고로운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유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들은 것을 받아들여 생각을 고쳐먹고 마음을 바꿀 때, 마치 요나의 외침을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처럼 우리도 하느님 앞에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유와 종살이를 대조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를 외적인 차원의 억압과 해방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 안에 얼마나 견고한 틀이 있는지, 혹시라도 스스로 간수가 되어 자신을 그 틀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묵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우리 마음속의 자유의 길과 종살이의 길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결국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매 순간 자유의 길, 회개의 길로 부르시는 주님 초대에 응답하여, 날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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