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 대림 제4주일

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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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7,10-14 / 로마1,1-7 / 마태1,18-24>


이스라엘 전통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공식적인 혼례를 치르고 함께 지내기 전, 약 1년간 약혼 시기를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약혼 시기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것이 드러난 것이지요. 이런 경우, 남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약혼한 여자를 고발하여 처벌함으로써 파혼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남모르게 조용히 파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가운데 두 번째를 선택했던 것이지요. 이는 성경이 이야기하듯, 그가 율법에 충실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과연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요셉에게 천사는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그가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인간적인 시선 안에 한정되었던 요셉의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립니다. 성탄은 이렇듯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새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 모든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제 삼의 길이 열리는 순간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 왕조를 다시 일으켜 이스라엘을 재건할 막강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강한 전사이신 하느님의 권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그들은 힘센 메시아, 이민족들을 물리쳐서 이스라엘을 해방할 수 있는 강한 존재를 통한 구원을 유일한 선택지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탄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드러나지요. 짐승의 먹이통에 뉘어진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성탄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선택지들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지난 대림 1주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성탄 구유의 의미를 설명하는 사도적 서한 ‘놀라운 표징’을 발표하셨습니다. 구유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의 의미를 설명해주시는 가운데, 목자들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지요. 교황님의 묵상에 따르면, 그들은 많은 일에 분주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겸손하고 가난하기에 가장 중요한 일의 첫 목격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분주함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 시야를 좁게 만들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좁은 시야는, 늘 생각하던 것과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없게 만들곤 합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막강한 힘을 지닌 메시아, 다윗 왕조를 다시 일으켜 이스라엘을 재건할 메시아를 꿈꾸고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은, 이미 그 시야가 너무 좁아져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들로서는 마구간과 구유, 그리고 거기에 눕혀져 있는 아기를 메시아로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으려면,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내려놓는 겸손함과 가난한 마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바로 그러한 여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복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처음에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되지요. 여기서 요셉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이성적인 고민이나 누군가의 조언이 아니라, 꿈이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의지를 발휘할 수 없는 잠자는 순간, 요셉에게 제 삼의 길이 열렸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겸손하게 내 힘을 내려놓는 순간이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만이, 목자들처럼 아기 예수님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께 응답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성탄은 익숙하고 또 당연하게 여기던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시선을 따라 새로운 길을 만나라는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거나 종속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때이고, 이 사람을 미워할지 아니면 없는 셈 치고 무시하고 살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며 살겠다고 결심하는 제 삼의 길을 발견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성탄을 기다리면서, 특별히 하느님의 시선과 하느님의 방식을 자주 의식하며 이 대림의 마지막 시기를 보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우리가 자주 발견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익숙함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느님의 방식을 만나고 거기에 더욱 맛 들일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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