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2021-11-17
조회수 276

<1마카2,15-29 / 루카19,41-44>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을 일컬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도성이라고 하시지요. 사실, 역사적으로도 이 지역은 전쟁이 그친 적이 거의 없는 곳임을 생각할 때, 과연 이름에 걸맞은 평화로운 도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두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다고도 하시지요. 그런데 이 또한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 못잖게 역설적입니다. 왜냐면 오늘 복음 바로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호산나!”, “거룩하시도다!” 라고 연호를 받으며 다윗의 자손으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셨기 때문이지요.(루카19,28-40) 예수님을 맞이하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사람들은 그렇게나 외쳤지만, 정작 마음으로 그분을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피상적으로는 평화의 도시에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예루살렘이었지만, 사실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평화도,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보시며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우리는 계속 종말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을 통해서, 남들에게 보여지는 외적인 모습이나 피상적인 신앙이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라고 한결같이 말씀하셨지요. 단순히 그분 양 옆자리를 꿰차거나,(마르10,37) 피상적으로 그분을 ‘주님, 주님!’하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마태7,22) 주님처럼 살도록 초대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초대에 어떻게 응답하는지가 마지막 그 심판의 결과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특별히 오늘은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도, 피상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답을 외우는 식이 아니라,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역시 신앙의 본질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발견한 바를 내 것으로 삼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때 비로소 진정 주님을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울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기보다, 오히려 그분을 미소 짓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분과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분의 벗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을 깊이 알아보고 그분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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