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 연중 제21주일

2021-08-21
조회수 483

<여호24,1-2ㄱ.15-17.18ㄴㄷ / 에페5,21-32 / 요한6,60ㄴ-69>


오늘 복음의 이전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이 참된 양식이고, 당신의 피가 참된 음료라고 하시면서 당신을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에 제자들은 거북함을 느끼고, 결국 많은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가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시작이지요. 한편으로,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더 거북하게 만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이 걸어간 길을 따라간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볼 때 생명까지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따라야 한다는 그 사실이, 제자들에게 당혹감과 거북함을 줄 수 있었겠다는 것이지요.


사실 오늘 말씀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요한6,1-15) 물 위를 걷는 모습을 보여주신 바 있습니다.(요한6,16-21)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따라나선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모습을 본 이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분의 제자가 되면, 부귀영화를 보장받고 신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터입니다. 그러니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예상치 못한 가르침은 더욱 당혹스럽고 거북한 말씀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거북하게 여겨질만한 순간이 이번만은 아니었지요. 지난주 매일미사 복음들만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월요일에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더니,(마태19,16-22) 화요일에는 바늘구멍과 낙타 이야기를 하시며 재산은 물론 가족까지 버리라고 하셨습니다.(마태19,23-30) 또 수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이나 마지막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보수를 지급하는 주인을 통해서, 자본주의에 근거한 공정과 정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처지를 염려하는 연민과 자비의 마음을 강조하셨구요.(마태20,1-16) 목요일에는 사랑이라는 혼인예복을 입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고,(마태22,1-14) 그 다음날에는 이를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풀어서 다시 설명해주십니다.(마태22,34-40) 그리고 어제 토요일에는 가지고 있는 권위마저 내려놓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초대하셨지요.(마태23,1-12)


이쯤 되면, 그리스도교 신앙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신앙은 현세의 이익이 보장되거나, 다른 사람의 떠받듦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아닌 것은 분명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가 현세의 복이나 명예를 절대적 가치로 여긴다면, 이 신앙은 적잖이 당혹스럽고 거북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소유하기보다 나누고, 내 뜻대로 하기보다는 배려하는 삶, 언제나 사랑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소명을 완성하기 위해, 거북한 말씀들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꿈꾸셨던 복음의 논리에 따라 살기로 마음먹는 것이지요. 이 선택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고, 또 내가 동의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일생일대의 결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는 여호수아의 물음에,(여호24,15) 이스라엘의 온 백성이 우리의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대답한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모든 순간마다 오직 주님만을 따르겠다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여전히 복음이 거북하게 다가오는 순간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버리는 건 늘 두렵고, 용서는 어려우며, 사랑을 완성하라는 요청은 언제나 무겁지요. 그래서 받아들이기 어렵고 불가능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 마음이 완고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완고한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셨던 같은 질문을 오늘 우리에게도 던지시는 것만 같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라고 말이지요.


그 질문에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6,68)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낯섦과 거북함을 넘어,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완전히 맞닿아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풋터 로고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4

전화번호 : 02-743-7026      팩스 : 02-743-7027

이메일 : cmfkorea@catholic.or.kr

COPYRIGHTⓒ CLARETIANS.  All Rights Reserved.


FAMILY SITES

풋터 로고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4      전화번호 : 02-743-7026      팩스 : 02-743-7027      이메일 : cmfkorea@catholic.or.kr

COPYRIGHTⓒ CLARETIANS.  All Rights Reserved.


FAMILY SI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