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사순 제2주일

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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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22,1-2.9ㄱ.10-13.15-18 / 로마8,31ㄴ-34 / 마르9,2-10>


얼마전 명동성당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최근 시작한 '명동밥집'이 열리는 날이어서, 명동성당 안 마당에 노숙인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늘 정갈하고 깨끗해 보이던 장소에 지저분한 차림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보였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낯섦을 넘어 언짢게 생각하는 이들도 일부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노숙인들에게 장소를 제공하면서, 화장실을 비롯한 성당 내 시설의 청결문제나 안전문제 등을 염려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보다 '이제서야 교회가 더 교회다워졌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전해줍니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는데,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지요. 전통적으로  모세와 엘리야는 모세오경과 예언서, 곧 구약시대의 하느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신약의 하느님 말씀이시지요. 다시 말해서, 그날 그 높은 산에는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 말씀이 함께 자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주님께 초막을 지어드리겠다는 베드로의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높은 산 위에 자리 잡은 거룩한 성전에 모셔두고 싶다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그 어떤 티나 더럼도 묻지 않은 그 거룩한 말씀을, 세속의 더러운 것들과 분리하여 고이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었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고인 물처럼 한곳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작은 씨앗을 땅속 깊이 넣고 발로 밟아도 기어이 싹을 틔우고 마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어느 한 곳에 가둬둘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말씀은 산 위의 거룩한 초막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말씀을 품고 사는 이들의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서 온 세상 구석구석 선포되어야만 했던 것이겠지요.


하느님의 말씀도, 그리고 그 말씀을 따르는 우리도 구름 덮인 높은 산 위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사랑을 다그친다면, 먼지와 때 타는 것이 두려워 세상과 분리되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산을 내려가는 마음, 정갈한 성당 마당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으로, 마치 높은 산에서 아래로 물이 흘러 내려가듯 연민의 강이 구석구석으로 흐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 내려감을 통해서, 해처럼 빛나던 하얀 옷은 빛을 잃고, 우리를 신비롭게 덮었던 구름도 걷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얼룩진 사랑으로 드러난 하느님 말씀이 산을 내려갈 때, 그제서야 그 말씀이 참으로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과연,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비는 구름 속에 머물며 사람들과 분리된 거룩함의 신비가 아니라, 개방과 연대를 통해 연민을 나누는 친교의 신비였습니다. 그 신비를 우리 각자의 삶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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