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0,28)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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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1,2,3,4 와 같은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 우주 만물의 물질들을 구별하도록 만들어 놓은 수학적 기호입니다.

“하나”라는 언어의 의미는 “둘”이나 “셋”과는 구별되는 존재를 말하고,

이를 수학적 기호이자 존재의 의미로 상징화시켜 “1”이라고 씁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 혹은 “1”이라고 쓰는 것은 바로 그것이

다른 “둘” 혹은 “그보다 많은 것, 더 큰 것”을 의미하는 상징들과 구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어떤 관계 하에 놓여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 또는 자신의 고유한 의미에 따라

각 사물들과 생명들은 각기 서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맺고 있는 관계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한 토마에게 예수님은

“위대한 스승님”이었고, “하느님의 아들”이었습니다.

토마에게 예수님은 “뭔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 분”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죽었고, 그래서 그에게 예수님은

지난 시간 그에게 위대한 사랑과 훌륭한 가르침을 준 분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입니다.

 

토마의 신앙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신앙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진리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더 많이 움직이고 지배하는 것은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물들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과 만질 수 있는 재화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더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것들은 손을 만져볼 수 있고, 감각을 통해 느껴볼 수 있는 것들이죠.

예수님의 사랑과 가르침이 여전히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을 때,

하느님의 구원과 체험이 여전히 성당 십자가 위에 걸려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믿기보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처럼 말합니다.


“난 내 손으로 그분의 손에 난 못 자국을 만져보고,

그분의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우리들은 읽고 아는 것 혹은 기억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이 아니라,

손으로 그분을 만지고 싶어 하고 피부로 그분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한 번 만나기만 하면 내 모든 것을 다 봉헌하겠어." 하며

하느님께 기꺼이 드려야 할 봉헌에 조건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의 온전한 봉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에 대해, 또한 토마 사도의 모습에 대해 요한복음은

“문이 다 잠겨 있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기억과 갈망과 욕심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음과 영혼의 문을 모두 다 닫아 놓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훌륭한 말과 하느님에게서 받은 보상 혹은 은총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훌륭한 말이라고 하지만 결국엔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가 받은 게 있어야지 하느님이 계시다고 인정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모습에 대해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은 상처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에 찔린 상처는 사실

우리 자신의 상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상처에 우리의 손을 가져다 대어 보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처는 바로 상처 입은 나의 아픔이고 동시에 당신의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에 난 고통을 당신이 같이 느끼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지극히 “나의 주님”이시고, 지극히 “나의 하느님”이십니다.

왜냐하면 내 상처 안에서 아파하시고, 나의 아픔과 함께하시며

또한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렇게 토마 사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시며,

우리에게도 그런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십니다.

 

상처로 마음을 닫아 놓은 우리에게 상처라도 당신에게 내어 놓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와 당신의 손을 넣고 치유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여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과 새로운 만남과 희망의 관계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희의 닫힌 문마저 열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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