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20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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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룩5,1-9 / 필리1,4-6.8-11 / 루카3,1-6>


미사 주례를 위해서 매주 북악산로 언덕길을 넘어가는 수녀원이 있습니다. 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가까운 거리라 간혹 걸어가기도 하지만, 아침시간에 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아서 대부분 차를 가지고 갑니다. 또 눈이라도 오면 언덕길 오르내리는 것이 위험해서 한참을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언덕이 조금만 더 평탄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런가 하면, 길게 가로놓인 철길이나 고속도로 건너편에 목적지가 있을 때도, 육교나 지하도로까지 한참을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역시 한번에 가로질러 가지 못하는 것이 꽤나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에서는 두 예언자가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리라"고 한 목소리로 예언합니다. 아마도 저처럼 목적지로 갈 때 불편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예언자들의 이 말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까워보이지만 그곳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을 때, 그 산과 언덕을 평탄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할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언덕과 골짜기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가기 어려운 조건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산과 언덕은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이들의 자만과 교만을 의미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골짜기는 깊게 패인 상처의 흔적들, 그리고 서로를 반목시키는 깊은 골과 단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평탄하게 되어야 하는 장애물들이지요. 그러니 두 예언자가 예언한 내용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두 예언자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바룩 예언자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바룩5,7)라고 하시며 평탄화 작업이 하느님의 주도로 이루어진다고 선포하지요.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신뢰하는 가운데, 그분께로부터 모든 구원이 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반면에, 세례자 요한은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루카3,4)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처럼, 사람들 편의 회개를 강조합니다. 생각해보면, 그가 요르단 강에서 주었던 세례도 바로 그 평탄화 작업을 위한 회개의 세례였지요.


물론, 이 두 예언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보완해서 구원으로 가는 길을 잘 알게 해줍니다. 그 어떤 장애도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멈출 수는 없지만, 마음을 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그 사랑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멈출 수는 없지만, 그 비에 젖어들기 위해서는 우산을 접고 비옷을 벗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교만의 산을 낮추고, 깊게 패인 상처를 치유하고, 갈라진 이들을 하나로 묶는 하느님의 구원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열려 있지만, 그 구원에 참여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들 노력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오래된 기도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행동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람의 노력이 모두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결코 멈출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마리아의 순명이 만나 일어난 성탄 신비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지요. 이처럼 하느님의 은총은 그분 길을 마련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마침내 그들의 노력과 맞닿아 세상 곳곳에서 구원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의 노력은 각 개인의 회개 차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차원, 다시 말해서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변화와 회개를 위해서도 힘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권력으로 누군가를 짓밟으려 하는 사람들을 보거나, 내 이웃이 합당하게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또 정의롭지 않은 방식이 관례가 되어 불의를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때, 우리는 다시 높은 산과 언덕, 그리고 깊게 패인 골짜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하느님 나라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임을 깨닫게 되지요. 이것들은 모두 그분 사랑과 우리의 노력으로 평탄화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특별히 인권주일을 보내고, 또 사회 교리 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구원을 향한 우리의 노력이 단순히 개인적인 평탄함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모든 피조물이 함께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있는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사회교리는 어려운 말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교회의 가르침이지요. 그리고 오늘 독서와 복음은 그 꿈이 실현되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주님과 협력하여 평탄케 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초대에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기꺼이 응답하고 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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