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연중 제14주일

2021-07-03
조회수 379

<에제2,2-5 / 2코린12,7ㄴ-10 / 마르6,1-6>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시골 태생에다가 안식일 법을 어긴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하기 일쑤였고, 고향 사람들은 목수 출신이라는 사실과 가족관계를 다 안다는 이유로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지요.


그러고 보면, 늘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완전히 다 알면 오해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모른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섣불리 안다고 자만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리고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부분적인 지식으로 모든 것을 아는 양 예수님을 판단하려 듭니다.


그 바람에 예수님의 기적에 놀라워하던 이들마저 결국 예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고 맙니다. 율법을 안다는 교만한 마음과 고향 사람이기에 그 사람을 다 안다는 자신감 때문에 스스로 눈이 멀어버린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마치 맹인이 코끼리 꼬리만 만지고서 그것을 뱀으로 확신하는 오류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눈먼 인도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오류를 우리도 자주 범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을 대하면서, 내가 본 모습이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한다고 믿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함으로써, 눈먼 인도자가 되기도 합니다. 비단 뒤에서 좋지 않은 험담을 하는 차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한정 짓고, 내 지식으로 그 사람으로 규정짓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그 누구도 한 사람의 모든 면을 입체적으로 다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지, 또 무엇을 꿈꾸는지 다 알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의 가능성도, 그리고 그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비친 그 사람의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지요. 감히 남을 판단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오직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만 그 참모습이 밝혀지는 신비로운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대할 때, 우리는 신비를 마주하는 마음으로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지요. 감히 다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신비로 발을 들여놓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고향 사람들 가운데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대할 때, 마치 내가 그 사람을 다 아는 양 규정 짓고 판단한다면, 결코 일상의 기적을 만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항상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되뇌며 산다면, 내가 보지 못하는 감추어진 신비를 결코 발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매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지으신 신비를 알아보고, 매 순간 기적 같은 만남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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