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사순 제1주일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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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9,8-15 / 1베드3,18-22 / 마르1,12-15>


40일간 쏟아진 비 탓에 온 땅이 물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태, 방주 안에 머물면서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이 계속되었겠지요. 아마도 이 시간이 방주 안에 있던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도전의 때였으리라 상상해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약속에 대한 희망을 간직해야 하는 시험의 때, 그리고 하느님과의 새 계약을 준비하는 정화의 때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실제로 오늘 제1독서를 보면, 홍수라는 절체절명의 사건을 통해서, 종국에 피조물의 죄악은 정화되고 하느님과의 관계는 새로운 계약으로 다시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험과 정화의 때는 성경 전반에 걸쳐 특별히 광야라는 장소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보통 광야라고 하면 주변을 둘러봐도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황량한 땅,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막막한 상태를 떠올리게 되지요. 마치 홍수로 온 땅이 덮힌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잃거나 실패하는 순간, 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암담한 순간을 일컬어 광야체험을 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홍수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광야체험을 통해서 결국 하느님의 선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경우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40년간의 광야체험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고, 죽음의 위협으로 두려움에 떨던 엘리야 예언자는 광야에서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세례자 요한은 광야체험을 통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기 소명을 깨달았고,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 선포에 앞서 광야체험을 먼저 하셨습니다.


이렇듯 광야체험은 새로운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벌거벗은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고, 또 눈을 현혹하는 것들이 사라지니, 더 본질적인 것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과연 광야체험은 진짜 나를 찾는 정화의 시간, 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가는 시험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온 땅이 물로 뒤덮인 홍수 사건과 막막한 광야체험을 떠올리다 보면, 바이러스로 뒤덮인 오늘날의 막막한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무력함 가운데 우리의 믿음과 희망이 정화되고, 또 서로를 다독이며 우리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답을 찾아가는 시험의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지금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홍수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코로나 외의 다른 치명적인 바이러스들마저 또렷이 보게 됩니다. 사실, 노아의 홍수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지요. 그때는 모든 피조물이 말 그대로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였지만, 지금은 각기 다른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방역의 효율성 차이, 그리고 나라별 백신 확보의 속도 차이 등을 보노라면, 누군가의 배는 참 튼튼한데 누군가의 배는 침몰 직전에 있음을 보게 되니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집단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또 다른 바이러스를 깨닫게 됩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굶주림, 차별, 혐오, 무관심과 같은 온갖 바이러스들은 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고, 기후변화라는 바이러스는 온 피조물을 황량한 광야로 계속 내몰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총체적인 위협 가운데 정화와 시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어둡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은 희망의 때이기도 하지요. 성경이 증언하듯, 광야의 여정은 죽음이 아닌 부활로 연결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곧, 이 시간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바이러스들이 정화되고, 인류의 소명이 더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음으로써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로마8,21-22)


지난 수요일부터 우리 교회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더욱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서 각자 어떤 결심을 하기도 하고, 희생과 절제를 다짐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회개와 정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광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활을 준비하는 당연하고 필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전 지구적인 회개와 정화를 위해 함께 연대하는 마음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온 피조물을 위협하는 모든 도전들을 통해서, 인류가 정화되고 새로운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회개의 시간, 정화의 시간, 그리고 희망의 시간인 이 사순시기를 통해서 우리 각자가, 그리고 온 인류와 피조물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새로이 발견하고 그에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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