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8,9) 평안하냐?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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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에 한 번,

그것도 단 두 마디의 말밖에는 하지 못하게 하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에 들어간 어떤 수도자가 맨 처음 2년을 채우고

드디어, 두 마디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는 원장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침대, 딱딱하다.”

그리고 그 수도자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다시 2년의 세월이 또 흘렀고

젊은 수도자는 또 두 마디의 말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다시 원장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사, 맛없다.”

 

다시 2년의 세월이 지난 뒤 젊은 수도자는

또다시 두 마디의 말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짐을 꾸려들고 원장 앞에 나타났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간다.”

 

이렇게 수도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그에게 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2년간 참았다가 할 수 있는 귀중한 두 마디의 말을

그대는 모두 불평과 불만을 말하는데 써 버리지 않았나?

그러니 견딜 수 없지.”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온통 무덤에 갈 생각뿐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 빨리 무덤에 가 주님을 뵐 생각뿐이었죠.

안식일의 낮과 밤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무섭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예수님께 달려갈 마음뿐입니다.

 

만약 그때 마리아 막달레나가 두 마디를 준비할 수 있었다면 어떤 말을 준비했을까요?

무덤 앞에 가 슬피 울며 “왜, 돌아가셨어요?” 하며 애타는 마음을 토로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 사랑해요!” 하며 진한 그리움을 말했을까요?

 

오늘 마태오 복음의 말씀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막달레나에게 “평안하냐?”하며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그녀도 예수님 무덤에 달려가 “주님, 평안하세요?”하며 묻지 않았을까 합니다.

 

“평안하냐?”는 예수님의 한 마디에는 평화와 사랑과 따스함이 들어있습니다.

만약 막달레나가 “주님, 평안하세요?”하며 두 마디를 준비했다면,

그 안에는 수많은 그리움과 사랑과 간절함이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안하냐?”는 예수님의 그 말은 막달레나에게

살아갈 이유와 살아갈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막달레나에게 “부활의 삶”의 의미를 살게 합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긴 밤을 지새우며 무슨 말을 하려고 준비했습니까?

“알렐루야!”, “주님, 알렐루야입니다.”하고 부활을 준비했나요?

아니면 “너 죽고, 나 죽자!”하며 어둠을 떨쳐버리지 못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하냐?”하며 따스함이 묻어나는 당신의 사랑과 평화를 전하며,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믿음을 주십니다.

내가 한 마디 또는 두 마디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어떤 말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아니면 이 부활에 내 주변 형제자매에게 어떤 말을 시작하면 좋을까요?

 

“주님, 따스한 말로 아픈 이들을 품어 안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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