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생명보험을 들었을 때는
15년 동안 돈을 내고 만60세까지 보장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40대가 되면서 20년 납 80세 보장의 보험을 다시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도 불안합니다. 80살이 되도 살아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나이가 되면 더 많이 병원에 갈 일이 생길 것이 확실합니다.
첫 번째 보험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60이 되도록 큰 병이 없었으니까요.
두 번째 보험은 그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아픈 곳이 여러 곳 나오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건강하게 살아온 지금 더 불안합니다. 세 번째 보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험 중독 아닌 중독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생명보험의 수많은 항목들이 점점 세분화되면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보장이 든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하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듣다보니,
다 부족한 것 같이 느껴집니다.
거기다 요즘은 가족이 환자나 약자를 돌보는 시대가 아닌 시간으로 빠르게 변해가면서
간병보험이 필수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건강해도 불안하고
오래 살아도 불안하고
계속해서 일해야 살 수 있으니 또 불안합니다.
그렇다고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나중에 자신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지 몰라서 또 불안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불안에 눌려 살도록
위기를 고조시키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받고, 아들딸과 손자손녀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저축하고 모아 둔 것으로 아껴 쓰면서 편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생각은
동화책이 나오는 옛날이야기 같습니다.
불안은 집착을 만들어냅니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정을 찾고, 위로를 찾고, 영적 안식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 안정은 자기 안정이고, 이 위로는 자기 위로위며,
이 안식은 자기만이 누리는 안녕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삶에 대해 방어적이고 계산적이고 경쟁적이 되어 갑니다.
이 불안의 시대는 우리의 병을 더 깊어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심각한 문제, 병을 같이 앓고 있다면 환자들끼리 유대감이 생겨야 하는데,
이 불안의 시대에서는 오히려 그 유대감 대신 점점 더 개인화가 강화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세분화 되고 개인화 되어 이제는 옆에 누가 있는 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이런 욕구는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자 이렇게 하면 너는 무사해! 너는 괜찮아!, 이제는 걱정 없어!” 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어 둡니다. 삶이 완전히 개인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만족의 세계는
자기 세계를 위협하는 것들을 배척하고 몰아내고자합니다.
그 세계는 또 불안하고 비극적이 됩니다.
사회적 유대감이 없는 곳에는 연대도 없고, 용서도 없고, 화해도 없으며, 나눔도 없습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야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있으면 더 불안하고 더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불안을 계속 조장할 것입니다.
이 불안의 시대에서
자기 영혼의 문을 잠그고 혼자 될수록 자신의 세계는 더 작아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행복의 열매를 작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세계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과 풍요롭고 높은 가치를 지닌 존재로 불리움 받았음을 말씀하십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로 영성과 모성 그리고 상상력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신에게 믿음과 의지를 갖게 하는 힘인 영성과
따스함을 주고받는 마음인 모성
그리고 나를 긍정하고 새로운 나와 모두가 더 나은 미래를 찾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영성과 모성과 상상력이 불안을 조장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존재 자체로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됨을 알려줄 것입니다.
불안에 둘러싸인 작은 영혼의 사람이 아니라
같이 있어 행복한 사람, 같이 있으면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합니다. 아멘.
사진 출처 : 티스토리 "astu" - 2025.04.10 "불안, 현대인의 그림자"

제가 처음 생명보험을 들었을 때는
15년 동안 돈을 내고 만60세까지 보장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40대가 되면서 20년 납 80세 보장의 보험을 다시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도 불안합니다. 80살이 되도 살아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나이가 되면 더 많이 병원에 갈 일이 생길 것이 확실합니다.
첫 번째 보험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60이 되도록 큰 병이 없었으니까요.
두 번째 보험은 그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아픈 곳이 여러 곳 나오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건강하게 살아온 지금 더 불안합니다. 세 번째 보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험 중독 아닌 중독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생명보험의 수많은 항목들이 점점 세분화되면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보장이 든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하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듣다보니,
다 부족한 것 같이 느껴집니다.
거기다 요즘은 가족이 환자나 약자를 돌보는 시대가 아닌 시간으로 빠르게 변해가면서
간병보험이 필수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건강해도 불안하고
오래 살아도 불안하고
계속해서 일해야 살 수 있으니 또 불안합니다.
그렇다고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나중에 자신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지 몰라서 또 불안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불안에 눌려 살도록
위기를 고조시키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받고, 아들딸과 손자손녀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저축하고 모아 둔 것으로 아껴 쓰면서 편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생각은
동화책이 나오는 옛날이야기 같습니다.
불안은 집착을 만들어냅니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정을 찾고, 위로를 찾고, 영적 안식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 안정은 자기 안정이고, 이 위로는 자기 위로위며,
이 안식은 자기만이 누리는 안녕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삶에 대해 방어적이고 계산적이고 경쟁적이 되어 갑니다.
이 불안의 시대는 우리의 병을 더 깊어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심각한 문제, 병을 같이 앓고 있다면 환자들끼리 유대감이 생겨야 하는데,
이 불안의 시대에서는 오히려 그 유대감 대신 점점 더 개인화가 강화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세분화 되고 개인화 되어 이제는 옆에 누가 있는 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이런 욕구는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자 이렇게 하면 너는 무사해! 너는 괜찮아!, 이제는 걱정 없어!” 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어 둡니다. 삶이 완전히 개인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만족의 세계는
자기 세계를 위협하는 것들을 배척하고 몰아내고자합니다.
그 세계는 또 불안하고 비극적이 됩니다.
사회적 유대감이 없는 곳에는 연대도 없고, 용서도 없고, 화해도 없으며, 나눔도 없습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야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있으면 더 불안하고 더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불안을 계속 조장할 것입니다.
이 불안의 시대에서
자기 영혼의 문을 잠그고 혼자 될수록 자신의 세계는 더 작아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행복의 열매를 작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세계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과 풍요롭고 높은 가치를 지닌 존재로 불리움 받았음을 말씀하십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로 영성과 모성 그리고 상상력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신에게 믿음과 의지를 갖게 하는 힘인 영성과
따스함을 주고받는 마음인 모성
그리고 나를 긍정하고 새로운 나와 모두가 더 나은 미래를 찾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영성과 모성과 상상력이 불안을 조장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존재 자체로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됨을 알려줄 것입니다.
불안에 둘러싸인 작은 영혼의 사람이 아니라
같이 있어 행복한 사람, 같이 있으면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합니다. 아멘.
사진 출처 : 티스토리 "astu" - 2025.04.10 "불안, 현대인의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