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부활 제4주간 목요일

2022-05-11
조회수 65

<사도13,13-25 / 요한13,16-20>


‘갑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님과 직원, 직장상사와 직원, 임대인과 임차인, 교수와 학생 등 구조적으로 불평등할 수 있는 구조에서 불합리하게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지요. 도둑질, 이간질, 싸움질 등, '질'로 끝나는 단어는 대개 좋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을 때가 많은데, 갑질 역시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다보니, 더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고, 또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어 부당한 ‘갑질’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공격받기 쉬운 나약한 ‘을’이 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노력도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취약한 상태, 소위 ‘을’의 위치가 되려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 초반에 언급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사건은 아마도 그 가장 특별한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이신 분께서 스스로 '을'의 자리로 내려와 취약한 상태로 제자들을 섬기셨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우리는 사랑과 섬김의 모범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관계 안에서 사회적 의미의 견고한 '갑을구조'는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아무리 큰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연인이나 자녀 앞에서 갑질을 부릴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 사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더할 나위 없이 상처받기 쉬운 무력한 상태로 자기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하였습니다.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사람들을 섬기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힌 어린양이 되셨지요. 물론 이것은 부당한 '갑을관계'의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취약해지는 사랑의 표현으로 스스로를 낮추시고 사람들을 섬기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라고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파견하십니다. 언젠가 제자들을 떠나보내실 때,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말라(루카9,3)고 하셨던 것처럼, 스스로 취약한 상태가 되어 큰 사랑을 실천하라고 우리를 보내시는 것이지요. 그 초대에 담대하게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기꺼이 사람들의 발을 씻어줄 때,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 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그분께서 또한 세상에 받아들여지실 것입니다. 이 파견에 충실히 응답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이자 선교사들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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