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시작

1849년 7월 16일, 스페인 빅(Vic) 신학교의 어느 작은 교실,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 (Antonio Maria Claret) 신부는 그곳에 함께 모인 다섯 명의 동료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었다.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한 위대한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동료 사제들 중의 한 명이었던 빌라로 (Vilaro) 신부가 반문하였다.

“우리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수적으로도 미약한데 어떻게 그런 큰 일을 하겠습니까?” 이에 글라렛 신부는 성령의 감도 하에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

“자, 여러분. 우리가 수적으로도 얼마 안되고 능력도 미약하기에 앞으로 하느님의 위대한 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티없으신 성모성심의 아들들의 수도회 (CMF)’라는 명칭을 지닌 글라렛 선교수도회의 존재가 탄생하게 되었다.

글라렛 성인이 수도회를 설립한 것은 즉흥적인 결단으로 취해진 것이 아니었다. 성인은 교구 사제로 활동하던 당시 까딸로니아 지방과 카나리아 군도 곳곳을 돌며 행했던 순회 설교의 체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화 되어야 할 절실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교에 열성을 가지고 준비된 사제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바 있었다.

이에 성인은 자신과 같은 영의 은사를 받은 사제들을 모아 혼자 힘으로는 행하기 불가능한 선교사명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02. 수도회의 확장

하지만 글라렛 선교수도회의 역사는 설립 이후 그다지 순탄하지 못하였다. 수도회가 설립되자마자 20일도 채 못되어 성인이 쿠바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그곳으로 떠나야 했다.

성인은 스페인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1868년의 혁명으로 인해 수도회 회원들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고, 1870년 10월 24일에 그곳에서 수도서원을 봉헌하고 마지막 일생을 마쳤다.

이후 글라렛 선교수도회는 한동안 성장에 있어 침체기를 겪었으나, 설립 동료 사제였던 호세 시프레 (Jose Xifre) 신부가 1858년부터 1899년 동안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장족의 양적 질적 발전을 이루어내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수도회는 다른 여러 나라들로 진출하여 설립 이래로 전통적인 선교 방식으로 자리잡은 대중 선교와 피정 지도 뿐 아니라, 본당 사목과 교육 분야에도 뛰어들면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하고자 하였다.


03. 20세기의 전반기

그러나 또 한 번의 혹독한 시련기가 찾아들었다.

1936년 7월 18일에 발발한 스페인 내란으로 인해 바르바스트로 지방에서 271명의 수도회의 형제들 (이들 중 51명이 복자품으로 시복되었음)이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신앙을 증거하다가 순교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이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여러 명의 글라렛 회원들이 자신들의 예언자적 정신을 증거하는 중에 순교로써 주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순교를 통해 더욱 굳건히 다져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후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 글라렛 선교수도회는 지난날의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일어서며 다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딛기 시작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1950년 5월 7일에 설립자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 성인이 성인품으로 시성된 것은 수도회로서 크나 큰 힘과 발전의 자극이 되었다.

이렇듯 글라렛 성인의 거룩한 삶이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인정받고 선포된 것은 수도회의 미래가 교회 내에서 힘차게 울려 퍼지는 서곡이 되었다.


04. 20세기 후반기와 오늘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수도회는 교회 전체 내에서 일고 있는 쇄신의 움직임과 보조를 같이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막은 수도회의 쇄신교회 내에서의 글라레시안 정체성에 대한 자각의 심화, 더 나아가 새로운 선교적 투신을 위한 엄청난 촉진제가 되었다. 수도회의 진출이 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으로 확장되어가면서 해를 거듭 할수록 쇄신의 과정은 더운 심화되어가며 지속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여러 다양한 나라들 안에 선교의 거점지가 확보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덧 성서 연구소와 수도생활 신학교 운영, 쇄신된 형태의 대중선교 수도자들을 위한 지도 및 봉사, 사회정의 및 평화를 위한 투신, 생태보존 운동, 가난하고 소외 받은 사람들과 이주민들을 위한 헌장투신, 대중매체를 활용한 선교, 종교 간의 대화 등의 새로운 사도직 활동의 지평이 개척되기에 이르렀다.

제 삼천년기의 문턱에 선 1999년에 설립 150 주년을 맞이한 글라렛 선교수도회는 2001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한 수도회 회원 실태 조사를 통해 전세계 63개 국에 걸친 451개의 공동체 안에 17명의 주교, 2033명의 평수사, 598명의 서원자 신학생, 145명의 수련자가 현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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