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글라렛 성인과 함께 하는 매일 묵상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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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일

 

≪저의 어머니시여, 제가 이 불행한 자들의 형제로서 무관심하게 그들이 파멸을 향해 사는 것을 바라보기만을 원하시나이까? 아, 아니옵니다. 하느님께 대한 저의 사랑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저는 그것을 묵인할 수 없나이다. 만일, 제 형제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를 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서전 158)

 

하느님과 형제에 대한 사랑

 


위의 인용을 시작하는 질문은 성인이 가진 확신을 재확인하는 수사학적 표현이지, 정말 어떤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당연하게도 강조점은 이어지는 내용에 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형제’라는 이 두 단어는 글라렛 성인의 글에서 언제나 함께 사용됨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단어를 떼어놓기란 사실 불가능합니다.


글라렛 성인이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드리는 이 기도에서 삶의 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다양한 지점들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 말과 행동으로 사랑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즉, 그러한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사랑이 배제된 마리아적 신심은 건강한 신심이 아닙니다.


무관심은 분명히 바이러스와 같은 것입니다. 교묘하게 작용하며, 매우 해롭고, 사랑이 움터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것은 이웃의 필요에 눈감아 버리는 마음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나오는) 탐욕스런 부자가 안고 있던 병도 바로 그것입니다. 너무도 명백하게 그의 마음을 덮쳤고 그래서 바로 그의 집 대문에 있던 가엾은 라자로를 볼 수 없게 만든 그 병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고자 애쓰는 이에게 권하는 두 가지 행동 양식은 바로 ‘보는 것’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순서에 맞춰 어떤 것도 이 과정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즉, ‘열린 두 눈’이 지닌 신비와 ‘일꾼들의 손’으로 하는 행위들을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민이 지닌 역동입니다.


친구여, 당신의 영성이, 더 구체적으로, 마리아와 당신의 관계가 당신을 무관심에서 꺼내어 연민으로 데려가는지 질문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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