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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사회 교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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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12-07 18:23 조회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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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11,1-10 / 로마15,4-9 / 마태3,1-12>


대림 시기는 기쁨과 희망의 때입니다. 왜냐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머무시고자 사람이 되어 오신 성탄을 기다리는 때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이 대림이 2000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성탄 사건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때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내는 이 대림 시기는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기, 그리고 세상 끝날에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림 시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쳐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의식하고,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대림 2주일의 복음은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선포하지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2) 다시 말해서, 그분이 오실 때가 가까웠으니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란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 회개의 참 의미는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의 통회를 넘어서,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까지를 의미합니다. 예컨대, 버스를 잘못 탔을 때, 잘못했다는 것을 뉘우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버스에서 내려 올바른 버스로 갈아타는 것까지 해야 회개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세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3,8)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뉘우치는 마음에 그치지 말고, 회개했음을 행실로써 보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회개를 일컬어, “안 좋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라는 의미로 회개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의 내 모습은 완전히 버리고, 성인군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회개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회개는 내 참모습을 찾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말고, 오히려 군더더기를 다 덜어내고 내 진짜 모습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아 보이는 모습이더라도, 그 모습은 위선의 포장, 껍데기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넓은 의미로 볼 때, 회개는 잘못에 대한 반성과 교정을 넘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참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잘못이나 죄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본연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니 죄에 대한 반성과 교정 역시, 결국은 우리가 창조된 모습을 회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회개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 삶을 보노라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많은 것들이 우리 존재를 포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느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든가, 어떤 평수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 연봉 얼마를 받는 사람, 아니면 회사의 부장, 상무 등의 직급으로 불릴 때, 그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모로 자기 진짜 모습을 포장해서 덮고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나’는 사라지고, 나에 대한 호칭, 나의 재력, 명예가 나와 동일시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는 아무리 멋있어 보이더라도, 정작 자기 자신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모든 호칭들을 다 버리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회개의 여정 안에서 그 포장지들 속에 숨겨진 자기 모습을 확인하고, 그 모습에 합당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 노력은 아까도 말씀드린대로, 결국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내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 어떤 세상적인 옷과 호칭을 넘어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그분의 자녀라는 가장 깊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여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여정을 통해 포장 안에 숨겨진 자기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도 그 겉모습이 아닌 참모습을 집중해 볼 수 있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적으로 잘 나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게 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거나, 아니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평등하게 창조된 형제자매들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오늘 대림 2주일은 우리 교회가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기억하는 인권주일이기도 합니다. 인권의 가장 첫 번째 근거는 우리가 예외 없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 앞에서, 그 어떤 포장도, 호칭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껍데기 안에 알맹이를 볼 수 있게 될 때, 개인적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얻게 되고, 사회적으로는 관대한 마음으로 모든 인류를 보듬어 안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알아 볼 수 있게 된 이상,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무시하거나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될테니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한없이 누추한 곳에 태어난 연약한 아기이지만, 그 참모습은 하느님이신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림 시기를 보내며, 우리의 시선이 껍데기를 넘어 알맹이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찾는 회개, 그리고 모든 이들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형제자매로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회개의 은총을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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