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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연중 제 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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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11-16 14:29 조회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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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3,19-20ㄴ / 2테살3,7-12 / 루카21,5-19>


얼마 전 잘 아는 신자분이 수술을 받으셔서 환자 방문을 다녀왔습니다. 열심히 사셨고, 또 자기 일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도 지니고 계셨던 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계획도 야무지게 세우신 분이셨지요. 그런데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불과 몇 주 만에 부랴부랴 수술하시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되었다고 하고, 또 크게 낙담하지 않으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분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힘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보장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교만일 수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건강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또 좋은 음식을 가려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적금이나 보험을 들어서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기도 하지요. 이는 지혜로운 대처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혹시 모를 앞날의 위험을 대비하고, 미래를 좀 더 안정적으로 살고자 하는 노력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미래를 넘어서, 그러니까 죽음을 넘어선 준비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종말은 언젠가 예외 없이 마주해야 하는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게 해주지요. 생각해보면,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생각됩니다. 열심히 운동해서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 듯이, 영성 생활을 통해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고, 또 좋은 음식을 가려 먹듯, 영혼에 도움이 되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죽음을 준비하는 보험과 적금은 결국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는 자선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25,40)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가난한 이들이 곧 그리스도이기에 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못 본 척하는 이들을 일컬어, “굶주리시는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지요. 더 나아가 성인은 “당신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결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씀으로, 나눔과 자선을 강조하기도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뜻에 따라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는 오늘, 종말을 기억하라는 주님 말씀과,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나눔의 정신을 묵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도자들이 서원하는 가난,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초대받은 복음적 가난의 삶은, 단순히 궁핍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언제든 필요한 이들과 가진 바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기에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들이 사는 가난의 삶이 겉으로 그렇게 큰 나눔을 만들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뎌진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고, 이기심을 낫게 하는 해독제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주 적은 양의 주사약이 온몸을 건강하게 만들 듯, 우리들의 작은 가난의 나눔이 온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적은 양의 누룩이 온 빵을 부풀게 하듯, 우리들 가난의 삶이 세상에 스며들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온 삶을 헌신하신 마더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이야기하신 바 있습니다. “여러분이 빵의 모습 가운데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가난한 이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보는 것은 훨씬 더 쉬운 일일 것입니다.”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가난한 이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들과 가진 바를 나눔으로써, 하늘에 보화를 쌓기로 다시금 결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죽음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든든한 적금이자 보험이 될 것이고, 또한 이 세상을 낫게 하는 치유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난과 나눔의 정신이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함께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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