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묵상나눔
묵상나눔

[6/9] 성령 강림 대축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카엘 수사 작성일19-06-08 10:32 조회55회 댓글0건

본문

<사도2,1-11 / 1코린12,3ㄷ-7.12-13 / 요한20,19-23>


오늘은 부활 시기의 마지막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 그러니까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제자들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온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대축일을 교회의 생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제자들을 충만케 하시고, 또 교회를 역동적인 선교 공동체로 만드신 성령께서는 어떤 분이실까요? 사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성령께 기도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성부 하느님, 성자 예수님과는 달리 성령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설명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성령께서 등장하실 때는 비둘기, 바람, 불 혀와 같은 상징이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만큼 영이신 분을 우리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설명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태양을 통해 설명하는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대낮에 하늘을 바라보면 태양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그 태양에서 비추어지는 빛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계심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 비유 안에서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열로 설명됩니다. 태양열이 만물을 소생시키고, 차갑게 얼어있던 세상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듯이, 성령께서는 생명의 영으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이지요.


이런 따뜻함은 우리 각자가 어렸을 때 느꼈던 엄마의 따뜻함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분의 모습, 또 그분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지요. 그런데 그 모습과 말과 행동 안에 따뜻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똑같이 말하고 행동했더라면 전해지지 않았을 사랑이 우리에게 따뜻하게 전해지고, 언제까지고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깊이 간직되는 것이겠지요.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시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2천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 무미건조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생생한 체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성령께서는 어떤 느낌을 주는 분이실 뿐 아니라, 실질적인 은총을 선물로 주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예컨대, 기쁨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확신하건대, 우리는 예외 없이 모두 기쁘게 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늘 기쁘게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평화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마음의 평화를 원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그 평화를 깨뜨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싶지요. 그런데 그게 늘 잘되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지만 잘되지 않는 것들을 열매 맺도록 도와주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사실 신앙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온갖 것들을 계명으로 정해놓고, 그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참으로 하고 싶은 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성령의 열매라고도 부르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는 하느님께서 억지로 우리에게 맺으라고 하시는 열매가 아니라, 우리가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열매들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렇듯 우리가 마음속으로 깊이 바라는 것들을 은총으로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완성 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들이 하나씩 맺히면서, 우리는 날로 거룩하게 성화 되어 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변화의 영이시고, 또 성화의 영이십니다. 미사 때마다 봉헌되는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듯이, 우리를 그렇게 거룩하게 변화시키십니다.


아울러 성령께서는 이러한 열매들이 우리 각자 안에, 또 공동체 안에 잘 맺힐 수 있도록 특별한 선물, 곧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아시다시피, 성령칠은이라고 부르는 슬기, 의견, 통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움의 선물을 통해서, 우리가 복음을 더 잘 이해하고, 분별력 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또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도록 이끌어 주시지요. 그래서 성령칠은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한 자양분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성령의 은사는 이 일곱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마음 깊이 간절히 원함에도 불구하고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 그래서 나의 성화를 가로막는 것이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성령의 은사가 필요하고, 또 당연히 그 은사를 청해야 합니다. 예컨대, 어떤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마음속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겠지요. 간절히 바라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지만, 내 힘으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청할 수 있고, 또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 어떤 능력이 필요할 때, 특별히 단체의 리더 역할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따뜻하게 돌보는 마음과 지혜를 청할 수 있고, 또 청해야 합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한 은사를 또한 청해야 합니다. 이렇듯 은사는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 신앙을 굳세게 해주고,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특별 은사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심령기도를 하거나, 예언을 하고, 치유를 하는 은사도 분명 존재하지요. 그리고 그 은사들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지금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그렇듯 특별한 모습으로 국한해서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살기 원하셨듯이, 성령께서도 우리 삶 전반에 하느님의 온기를 전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강림 사건이 나와 무관하거나, 내 삶과 동떨어진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사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 그래서 우리에게 내려오는 분이시니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 삶에 하느님의 따뜻함을 전해주시고, 또 우리가 거룩하게 변화되도록 도와주는 분이시지요. 특별히 성령의 은총이 충만하게 주어지는 오늘, 오순절 다락방에 계셨던 성모님과 제자들의 마음으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성령의 은사를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